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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구독 경제의 역설: 소유하는 소비가 사라지다

20세기 소비자 경제는 '소유'를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자동차를 구입하면 당연히 나의 것이었고, 음원을 구매하면 물리적 형태로 음악을 '소유'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소비 패턴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더이상 제품을 소유하지 않고 소비할 수 있게 됐습니다. 대신 우리는 정기적으로 요금을 지불하면서 콘텐츠나 차량, 소프트웨어, 가전제품, 의류 등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됐는데 바로 이러한 구조를 우리는 '구독 경제'라고 부릅니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전세계 구독 서비스 산업은 연평균 2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 유통 및 소매업보다 두 배이상 빠른 속도입니다.

 

구독경제는 양면적인 특성을 갖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초기에 큰 지출 없이 다소 저렴한 비용으로 고가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서비스를 손쉽게 체험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구독을 취소함으로써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기업은 정기적인 수익 흐름을 확보해 예측 가능한 재무 계획 수립이 가능하고 고객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마케팅이 용이해 집니다. 하지만 문제는 편리함 뒤에 숨어있는 구조적인 변화에 있습니다. 소유권이 없다는 것은 사용자의 자율성을 제한할 수 있고 구독 서비스를 중단하면 모든 자산의 접근이 즉시 사라진다는 점에서 일종의 경제적 종속 상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소비자에게 막강한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즉 소비자들이 구독서비스에 의존하면 의존할수록 그 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게로 옮겨갑니다. 이처럼 구독 경제는 단순히 소비 패턴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시스템의 본질 즉 자산, 가치, 교환의 구조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구독 경제의 역설: 소유하는 소비가 사라지다

 

구독경제가 갖는 한계효용과 소비패턴의 전환

고전경제학의 핵심전제 중 하나는 합리적 소비자 가설입니다. 소비자는 자신이 가진 자원 내에서 가장 큰 효용을 얻는 방향으로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의 연장선 상에 있는 개념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동일한 재화를 반복해서 소비할수록 그 만족도는 점차 감소한다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오랜만에 떡볶이를 먹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첫 젓가락에서 감동의 물결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식사가 마무리를 향해 달려갈수록 처음 맛보았던 감동은 점차 사라져가고 식사가 끝난 직후에는 '당분간 떡볶이를 먹지 않아도 되겠어'라는 생각으로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바로 한계효용체감 법칙입니다.

 

하지만 구독경제에서는 이 법칙이 다르게 작동합니다. 소비자는 개별 재화 혹은 서비스에 대한 효용보다 전체 재화 혹은 서비스에 대한 잠재적 접근 가능성에서 효용을 느낍니다. 넷플릭스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넷플릭스 구독자는 하루에 영화 한 편을 보지 않아도 언제든지 수천 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 비용을 기꺼이 지불합니다. 즉, 현실적으로 내가 넷플릭스를 얼마나 이용하는지보다 심리적으로 영화, 드라마 수천 편을 보유하고 있다는 심리적 안도감에 더 큰 효용을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비 방식은 전통적인 한계효용의 이론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시각을 넓히고 있으며, 소비자 효용 측정에 있어서 기회 기반 효용이라는 새로운 분석 틀을 요구하게 됩니다.

 

기업 측면에서는 소비자의 실제 이용 여부보다 소비자들이 서비스를 해지 않고 얼마나 오랫동안 구독을 유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소비자들이 서비스를 해지하지 않기 위한 방안들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때문에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강화하는 등 '계속 구독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예컨대 넷플릭스가 끊임없이 새로운 영화, 새로운 드라마 콘텐츠를 추가하고 더 나아가 콘텐츠 제작 지원에까지 나서는 것이 바로 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소비자가 가격 대비 효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며, 자칫하면 비합리적인 과소비 또는 구독 피로감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이는 정보의 비대칭성과 심리적 비효율성이 결합된 새로운 소비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GDP 측정의 한계와 구독 경제의 경제지표 왜곡

전통적으로 국내 총생산, GDP는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한계적 생산성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구독 경제가 확산되면서 이 체계는 심각한 현실왜곡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구독은 통상 매달 혹은 연 단위로 소액결제가 반복되는 구조인데 이는 단기 소비로 인식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지속적인 서비스 계약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생산과 소비활동을 과소평가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한 사용자가 오피스 소프트웨어를 30만원에 구매했다면 이는 그 해의 GDP에 모두 반영됐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소프트웨어를 구독 형태로 월 1만원씩 3년간 사용하면 GDP는 매월 분할되어 반영되며 이에 따라 경제성장률은 실제보다 낮게 측정됩니다. 이는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된 현대 경제에서 GDP가 실제 경제활동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음악과 영상, 교육, 헬스케어 등 점점 더 많은 서비스가 구독 기반으로 바뀌면서, 국가 차원의 경제 통계는 정책신호의 왜곡 가능성을 안게 됐습니다.

 

더불어 구독 모델은 국경을 초월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국내 생산' 개념자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예컨대 미국 기업이 만든 스트리밍 서비스를 한국 소비자가 이용하면, 이는 한국인의 소비지만 미국의 GDP로 계상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플랫폼 지배력이 강한 글로벌 IT 기업에게 수익은 집중되고, 세수는 분산되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구독 경제의 확대는 단순한 통계 문제가 아니라 경제 주권과 재정정책의 재구성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자유와 플랫폼 종속의 딜레마

표면적으로 구독 경제는 '소비자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원하는 것을 원할 때 선택하고, 필요없어지면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소비자들이 특정 플랫폼에 종속되는 현상이 더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를 플랫폼 락인 효과라고 부르는데, 이는 특정 서비스를 계속 이용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사용자가 해당 서비스에 축적한 데이터, 콘텐츠 히스토리 등이 전환비용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유튜브 프리미엄 사용자는 동영상을 시청하면서 중간에 광고를 봐야 하는 경험에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그동안 유튜브 프리미엄을 사용하면서 쌓아둔 영상 재생 목록, 구독리스트 등의 데이터 때문에 다른 서비스로 옮기고 싶어도 결과적으로는 이를 포기하고 기꺼이 프리미엄 구독을 연장하게 됩니다.

 

이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하고, 자유시장 경쟁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는 과점 시장 구조로의 전환이며, 일부 플랫폼 기업이 구독 기반을 통해 고객 데이터를 독점하고, 가격 결정력을 획득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또 중소기업이나 독립 창작자는 이러한 플랫폼 구조 내에서 경쟁이 어려워지고 결국 플랫폼 내부의 수익 분배 논리에 예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구조는 플랫폼 독점과 소비자 복지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업은 구독료를 조금씩 인상하면서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소비자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를 결국 감수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이미 구독경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기업들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구독료 인상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마치 공공재처럼 인식되던 디지털 서비스가 사실상 사기업의 수익창출 수단으로 완전히 전환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구독 경제는 처음에는 자유롭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깊은 종속을 낳는 '경제적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는 셈입니다.